홍혜걸, 여에스더, 부부 제주집 프로필, 나이, 자녀, 아들, 가족, 여동생, 장기기증 슬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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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부 홍혜결, 여에스더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선후배로 시간을 보냈다. 만난 지 94일 만에 결혼한 두 사람은 현재도 ‘국민 의사 부부’라는 타이틀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실제로 홍혜결은 두 살 어렸지만 생일이 빨라 한 학년 아래였다. 선배 여에스더를 서울대 재학 시절 처음 본 홍혜결은 워낙 유연하고 여성스러우며 매력적인 외모에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에스더가 홍혜걸에 대한 첫인상은 촌스럽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였는데… 이후 여에스더는 전문의가 된 후 다시 홍혜걸을 만났고, 한 번도 키스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에 여자. 그녀는 손을 잡고 크게 숨을 내쉬며 그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홍혜걸의 순수한 면모로 인해 교제 94일 만에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한편, 현재 여에스더는 서울에, 홍혜걸은 제주도에 집을 갖고 있으며, 두 사람도 제주에 거주하고 있다. 300평 규모의 크고 넓은 집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이처럼 두 커플은 오랫동안 별도의 방과 집에서 생활하며, 마치 결혼 전 연애를 했던 것처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홍혜걸 프로필 나이 : 1967년 2월 6일 출생. 57세 고향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학력 : 용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 가족 : 부인 여에스더, 장남 홍성우, 차남 홍 영우 신체 : 키 182cm, 몸무게 83kg 군 : 해군 군의관 (허리부상으로 전역) 종교 : 가톨릭 (세례명 : 빈센트) 현직위 : 의사, 방송인, 기자, 의료채널 애프터더레인 대표

여에스더 프로필 나이 : 1965년 5월 11일 출생. 59세 고향 : 대구광역시 집 :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학력 : 경명여중 졸업, 대구 남산여고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 석사/박사 서울대 대학원 예방의학 박사 가족 : 남편 홍혜걸, 첫째 손 홍성우, 차남 홍영우 종교 : 천주교(세례명 : 에스더) 현 직업 : 의사, 방송인, 에스더 대표 공식

먼저 남편 홍혜걸을 살펴보자. 여에스더는 앞서 첫인상이 촌스러운 느낌이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고향 깊은 시골 지역인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군인이라는 특수한 직업으로 인해 오랫동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국의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한 아버지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후 처음으로 서울 구로공단 근처에 집을 샀는데, 가족 5명이 한 방에 머물렀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전성기를 보낸 홍혜걸 씨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의 꿈을 이루었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해군외과의사로 복무했다. 그러나 군 복무 중 허리 부상으로 전역한 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산업보건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군 제대 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국내 최초의 의사 출신 의료기자가 됐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강사로 활동하고 TV에 출연해 의료정보를 소개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홍혜걸의 TV 출연 빈도가 크게 늘었고, 당시 함익병과 함께 친근한 의사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의 연인으로도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고 있다. 아내 여에스더도 크게 늘어나 ‘국민 커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들은 또한 쌍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던 중, 2021년 6월 8일, 홍혜걸이 폐암에 걸렸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폐암이 아닌 간유리 그림자가 발견된 것으로 설명됐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폐암으로 발전할 확률이 높아 결국 폐의 절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이후 그는 오랫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고 아내 여에스더를 서울에 남겨두고 요양을 위해 혼자 제주도에 가서 300평짜리 호화주택에 살고 있다.

다음으로 아내 여에스더의 인생 이야기는 TV에서 볼 수 없을 만큼 좋은 일도 꽤 많이 겪었을 것 같지만, 슬픈 가족사를 비롯해 힘든 시기도 겪었다. 우선 대구광역시에서 다섯 딸 중 셋째로 태어난 여에스더는 꽤 부유한 가문에 속했다. 그의 할아버지 여상원씨는 대구경북 지역 재벌이자 대구일보 사장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대구일보 기획국장 시절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를 위해 전단을 나눠주는 일을 했다. 이에 아버지는 중앙정보부로 끌려갔고, 할아버지는 청와대에 갔으나 국외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후 보복조치로 회사를 매각하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72년에 대구일보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2학년 때 그만두고 의과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에스더는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의대 진학을 목표로 삼은 뒤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전교 1등을 하다가 공부에 소질이 있음을 깨닫고 정유 내 최고의 여학생이 됐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지만 다들 엘리트인 것 같아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상위 20% 안에 들었다고 합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고, 외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한계에 부딪혀 사진 기술을 배워야 했다고 한다. 전문의가 된 뒤 자신에게는 행복만이 찾아온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그녀는 노처녀였고 결혼할 사람도 없어 우울증에 빠졌다. 그러다 1995년 세미나에서 홍혜걸을 만나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예방의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과정을 마친 후 함익병 선생님과 함께 피부과 진료소를 개원하였고, 이후 2009년 에스더 포뮬라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방송계에 진출함과 동시에 의사, 사업관리자로도 활동하며 대중의 인정을 받아왔다. 등 다양한 예능,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 그리고 . 한편 여에스더는 그토록 사랑했던 여동생이 사망률 80%의 간질환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가슴 아픈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에스더의 남동생은 동생이라기보다 언니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특별한 존재였고, 아픈 동생을 위해 장기기증까지 결심했다고 한다.